영화 리뷰

[날씨의 아이]“이제 비는 그치고, 우리의 세상이 빛나기 시작할 거야”

위드무비 2023. 3. 19. 19:13






1회차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님의 무대인사가 있는 영화를 관람하고 왔습니다.

2회차에서는 호다카를, 3회차에선 케이스케를 중심적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여담인데, 처음 무대인사 관람을 할때

영화표를 뽑고 나서 들어갈려는 찰나 영화표가 사라져 있어서 적잖이 놀랐습니다. 아니 분명 에코백에 넣었는데 어디로 사라진 건지, 한참을 당황하면서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과 직원분이 제가 접어놓은 듯한 영화표를 들고 다니시는 거예요. 혹시 몰라 여쭤보니 제 거였더라고요... 미술 하시는 분들이 들고 다닐법한 붓 통? 같은 걸 들고 다니시던 분이 찾아주셨는데 어찌나 감사하던지... 나중에 생각해보면 그건 사실 붓 통이 아니라 카메라맨들이 렌즈를 담는 통이 아니었을까 뒤늦게 생각해 봤습니다 ㅋㅋㅋ










영화를 보면서 확실히 다채로운 색감은 신카이 마코토 작품이구나 했습니다. 다만 소재가 소재다 보니 비나 물들이 자주 클로즈업 되는데 물들이 끈적하고 꾸덕하게 모이면서도 아름답게 흘러가는 그런 장면들이 지브리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물방울로 이루어진 물고기들이 나타나고 합쳐지고 사라지는 모습 또한 지브리를 떠올리게 되더라구요. 게다가 중간에 히나와 호다카가 만들어 먹는 밥이 얼마나 맛있어 보이던지... 








좀 참신하게 느껴졌던점은 흐린 날 비오는 장면에서 밝은 OST와 함께 연출되는게 많았던 거였습니다. 신나고 밝은 음색은 아름다운 영상미를 돋보이기 위해 그에 맞추어 연출되기 마련인데 정말 꿉꿉하고 흐린나날에 밝은 OST를 자주 넣던게 인상깊었어요. 요새는 다채로운 작품들이 많아지면서 여름의 이미지를 파란 하늘과 적란운으로 표현하는 게 많이 사라졌죠. 그랬던 여름의 이미지를 다시 불러온 게 아닐까 싶었을 정도로 아름답고 웅장한 적란운이었습니다. 다만 특색이었던 건 재앙을 불러오는 검은 적란운이 더 강렬한 이미지였다는 것.


호소다 마모루 감독님의 최근 작품들을 보면 모성애-부성애-아이의 시선을 주제로 영화를 만들어 갔는데 날씨의 아이를 보면 신카이 마코토 감독님은 등학생의 판타지 다음에 중학생의 판타지를 만들고 싶었던 걸까 싶었습니다. 그도 그럴게 등장인물들이 실제로 어린 것도 한 몫했지만 아이들이 행동하는 바와 생각하는 점이 정말 중학생 정도라고 느꼈습니다. 왜 저렇게 전개하지? 라고 생각을 하다가 이것을 등장인물들의 나이에 맞게 일부로 의도한 거라면 좀 납득할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가령 사랑의 도피로 우리들만 있으면 어떻든 좋다는 행동 가짐이나, 흥분하면 자꾸 판단력이 흐려져서 사람들을 위협하는 모습, 누구한테 기댈 수 밖에 없거나 신에게 간절할 수 밖에 없는 모습, 뒷일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현재의 문제만 급급히 피하려하는 행동, 경찰이나 케이스케가 자신들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할 거란 걸 고려하지 않는 모습들은 자연스레 납득가능한 양상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이게 주인공들이 ‘중학생’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행동거짐들을 일부러 이렇게 표현하기 위한 것들이라고 생각이 든 뒤로는 제작진에게는 '아 일부러 저렇게 그린거구나' 라는 공감이 들었습니다.

확실히 저도 처음에 아무리 중학생이라지만 사람을 향해 총을 겨누는 모습을 보고 경악을 했습니다. 그런데 얘들이 신분증없는 중학생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여기 나오는 어떤 엑스트라보다 무력하다는 생각이 든 이후에 2회차를 보다보니 1회차 때랑은 조금 다르게 호다카와 히나의 행동거지가 많이 이해가 간것은 사실입니다. 2회차에선 흥분해서 당황할때의 호다카와 히나의 모습을 많이 관찰했습니다. 인터넷상에서도 그렇지만 실제로 영화 관람이 끝난이후 영화관에서도 "총을 굳이 왜 쏘는거야?" 라는 말이 자주 들립니다. 그런데 2회차를 보면서 느껴진건, 감독이 호다카에 주어준 총은 호다카가 아직 무력한 어린아이라는것을 보여주는 상징이자 히나가 가진 날씨의 힘과 같은격의 상징 이라는 것입니다. 

호다카가 중학생이라서 자기보호의 수단으로 총을 쏴도 무방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호다카가 총을 쏘는 행위에서 중요한점은 자기보호를 하기위해 표현된 것이 아니라 감독이 '호다카가 무력한 상황에 놓이면 얼마나 이성판단이 되지 않고 상황을 타파할 수단이 없는 어린아이인가'를 보여주는 매체이라는 겁니다. 그만큼 실제 호다카가 무력하게 위험에 노출된 상황에서는 자기만 이해하는 횡설수설한 말, 그의 표정, 심리적 판단력에서 나오는 불안감들이 영상또는 소리로 연출되어 있다는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호다카는 총을 쏠때마다 총을 버리게 되는데 이는 감독님이 호다카가 총을 쥘수 밖에 없더라도 돌파하고 싶은 간절한 상황이 있고 그만큼 사용해서는 안될 물건이라는 것을 호다카 또한 인지하고 있다는 걸 표현하기 위해 넣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호다카가 경찰들을 무슨짓을 해서라도 빠져나가려고 했다면 총을 버리고 도망치면 안됩니다. 쏘지 않더라도 들고 도망쳐야 하는데 쏠 생각도 없고 그저 시간이랑 빈틈만 만들면 되기 때문에 버렸다고 생각합니다. 총을 겨누는 행위 자체가 완전히 비윤리적인 행위 입니다. 감독님 또한 논란을 인지하고 일부러 넣을 만큼 호다카가 무력하고 간절한 상황이라는것을 표현하기위한 매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처음 1회차 감상을 할때 폐건물에서 케이스케와 조우하는 상황에서 하늘을 향해 총을 쏘는 장면을 살짝 오해했는데. 왜 갑자기 신에게 빌면서 자기들을 내버려두라고 하늘로 총을 쏘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엉뚱해서 아무리 어린아이라도 갑자기 저럴까? 라는 생각을 했는데 2회차로 다시보니 케이스케 조차 제압하지 못하고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기좀 보내달라고 하늘에 위협사격을 하는 거였더라구요... 사실 무력한 상황에서 호다카나 히나가 느끼는 절박함이나 불안감은 누구나 공감하려 한다면 공감할 수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돈도 없고 맘편히 잘 곳도 없고 날씨는 미쳐돌아가는데 자기들을 인증할 신분 또한 없어 각박한 세상에서 자기 편이라고 여겨지는건 셋 뿐이니까요. 다만 그 무력함을 계속해서 표출하다가 절정에서 어린아이의 총기소지로 표현이된것 때문에 논란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호다카가 가지는 총은 히나가 가지는 날씨의 힘과 동격의 상징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이 두가지 매체는 어려운 상황을 쉽게 타파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이유에서라 할지라도 사용해서는 안되는 힘입니다. 이 둘은 갑자기 주인공들에게 주어져 위기의 순간을 모면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그 순간 만큼은 잠깐의 득을 볼 수 있어도 나중엔 스스로에게 돌아와 독이되죠. 이 둘의 근본은 누군가를 위해 사용되려하지만 결국 자기의지로 사용해 스스로의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또한 어린아이들이 자신들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하죠. 히나를 구하고 만나기위해 총을 쥐는 호다카와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자신하면서도 호다카를 구하기 위해 번개를 내리는 히나의 모습에서 사용하면 안된다고 인지하면서도 서로를 위해 사용하고 그 두려움에 손을 떨게 되는것이 잘 표현됩니다. 다만 어린 주인공들이 함부로 행하기엔 꽤나 극적인 방법이라 연출이 느껴지기 보다 그 행위에 대한 반감이 더 느껴지는것 같아요.













작중 히나와 호다카는 둘다 중학생 정도 인데 히나는 중학생이면서도 어른스러운 모습, 호다카는 비슷한 연령임에도 더 순수한 모습을 많이 보여줬습니다. 감독님이 히나의 누나캐릭터를 더 밀어주는건 맞는건 같기도... 얘네들이 중학생이란 걸 생각하지 못했다면 호다카만이 너무 취급이 안 좋다 표현될 정도로 둘의 이미지는 좀 달랐습니다. 너의 이름은.에서 타키와 미츠하는 혼란스러운 무스비 속에서도 서로 운명을 바꾸려 악착같이 발버둥 치는 모습이 정말 멋있었습니다. 다만 여기서 호다카는 그저 신에게 비는 것뿐, 경찰에게 도망치는 것뿐 특별한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어요. 히나의 입장에선 자신을 구하러 갑자기 하늘까지 올라온 호다카는 정말 멋있고 빛나보였을 겁니다. 하지만 제3자의 입장에서 호다카가 한 일들을 생각하면 문득... '뭐 했지?' 싶습니다. 이것이 감독이 떠올리는 고등학생 나이의 주인공을 바라보는 시선과 중학생 나이의 주인공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구나 느껴졌죠. 호다카나 히나가 그만큼 고생을 한건 부정할 수 없지만 히나를 구하기 위해 주인공으로써 더 개연성 있고 멋있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램도 적잖이 있었습니다. 절정인 결말만 본다면 하늘까지 올라와서, 이세상 모두의 편보다 히나의 편만을 들어주며, 같이 외쳐주고, 같이 기도해주는 모습은 전형적으로 멋있는 주인공이었어요. 다만 절정을 제외한 영화 대부분의 과정에선 그렇게 특별한 점은 못느꼈던 것 같아요. 중학생들의 처절한 생존분투라고 하면 솔직히 박수를 쳐주고 싶고 어떻게든 생활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그 모습은 무척이나 대견하다고 생각합니다.

 


은근히 나올것 같으면서도 안나온 부분이 케이스케의 반지, 비여자, 고양이, 호다카의 과거인데요. 1회차를 봤을땐 왜 이야기를 안해주지 하고 불만족스러웠으나 2회차를 봤을때 대략 어떤 느낌으로 잘랐는지 알겠더라구요. 이게 1회차에서 납득이 안된다는 점은 어찌보면 연출부족일 수도 있고 온전히 제 잘못일 수도 있다고 여깁니다. 케이스케에 관련된것은 3회차에서 많이 눈이 갔습니다. 3회차이후로 갈수록 호다카나 히나보다는 케이스케에 감정선이 더 실리는거 같았습니다.

고양이는 얘가 날씨의 신과 관련된 뭔가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냥 고양이... 극장용 애니메이션에서는 은근 의미도 없는것 같은데 주인공에게 마스코트격 동물을 자주 붙여주네요. 그래도 다들 뚱뚱해진 아메가 나올때 많이들 웃으시더라구요 ㅋㅋㅋ

1회차에선 왜 호다카의 과거사를 알려주지 않는지 궁금했습니다. 다들 그런 생각이 들었을꺼에요. 아니 정작 호다카가 왜 섬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하는지 저렇게까지 도쿄에 남고 싶어하는지 알려줘야 공감을 할것 아닌가 느낄겁니다. 근데 2회차부터는 '그의 과거가 그렇게 중요한 부분은 아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중요한건 도쿄에서 히나를 만나 이어지는 이야기 입니다. 문제는 호다카가 왜 도쿄에 있고 싶어 하는가인데 이게 있어야 히나를 만날 명분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둘은 서로 비슷한 처지에 놓여 같이 만나게 된다는 명분만 있으면 이야기를 이어나가기에 충분하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중요한건 그들이 같이 있는 이야기이니까요. 그래서 그는 불행한 과거를 가지고 도쿄로 왔지만 그게 '어떤 이야기'인지 히나와의 이야기에선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잘랐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히나의 경우도 동일하게 어머니가 어떻게 아프셨고 투병생활중 얼마나 힘들었는지, 돌아가신후에는 어떻게 버텼는지 등등은 일절 나오지 않죠. 호다카의 과거는 대략 가정폭력의 정도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가 섬에서 멀어져가는 햇빛을 향해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서 그의 얼굴은 누구에게 맞은것 마냥 다치고 엄한 몰골이 되어있죠. 이 장면으로 그가 가출을 하게 된 이유를 넌지시 던져준것 같습니다. 히나 또한 비슷한 처지가 된 과거는 역시 가정의 어려운 사정이죠.

이번 작품에서는 정말로 같은 운명의 평행선상에 놓여있다는 늬앙스의 등장인물이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호다카, 케이스케, 히나, 나츠미, 히나의 어머니, 케이스케의 아내가 서로 비슷한 운명으로 섞여있는 기분이에요. [날씨의 아이]에서는 왠지모르게 '무스비'를 부각하려는건가 싶을 정도로 그들의 운명은 평행적으로 비교 됩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님의 언급은 아래에 할 예정이나 이 작품들의 세계관은 이어지게 됩니다. 이번에는 더욱 세계관이 가지는 특별한 운명을 더 표출하고 싶어한 기분입니다.

호다카와 히나는 불행한 가정사정을 타고나 힘들어지고, 만나서, 사건을 겪고, 사랑하게 됩니다. 호다카가 잡혀가는것, 히나가 하늘로 사라지는것, 갑자기 총을 사용하게되고, 날씨를 다루게 되는 그들의 운명은 얘네들이 정말 '엮여있다' 라고 생각들었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붉은색과 푸른색이 대비되는 색표현을 굉장히 보란듯이 나타냅니다. 또한 악세사리가 자주 클로즈업 되는데 이게 그냥 클로즈업 될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대비되는 색표현이나 악세사리들은 영화속에 나오지않은 '비여자'와 '맑음여자'에 관한 은유나 그들의 운명을 넌지시 알려주는것으로 해석하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정확한 표현의 연출이 없는이상 추측이지만 영화속에 나온 비여자는 '스가 가문'의 이야기 라고 생각합니다. 케이스케의 아내나 나츠미가 직접적인 '비여자'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아무래도 아마노 히나가 맑음여자로써의 운명을 타고 났다면 스가 가문 또한 비여자로써 운명을 가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2회차를 보면서 은근히 떡밥을 계속 주는구나 생각이 들었는데. 점쟁이가 말하길 비여자와 맑은여자가 존재한다고 언급하고 실제로 점쟁이의 말은 맞아떨어지고 있습니다. 맑음여자인 히나가 존재하는데 비여자는 왜 나오지 않냐고 느끼신 분이 많을 겁니다. 영화 초반 비여자에 관한 점쟁이의 말에 나츠미는 '완전 내이야기' 라면서 공감하게 됩니다. 이건 그냥 나츠미의 쾌활하고 가벼운 성격을 보이기위한 장면일 수 있으나 스가집안이 비여자의 운명을 타고났다고 생각할 수 있는 떡밥이 시초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비여자의 용신은 술을 좋아한다고도 하는데 맑음여자의 여우신은 무어라한지 잘 기억이 안나네요. 히나와 호다카는 굉장히 자주 푸른색체로 연출이 이루어집니다. 반대로 케이스케부터 나츠미, 딸인 모카까지 스가집안 대부분은 붉은색체로 연출이 이루어 집니다. 이건 좀 오버하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대놓고 스가쪽은 붉은색, 히나와 호다카 쪽은 푸른색 배합을 대비되게 사용하는데 옷, 악세사리, 머리색에 눈색, 심지어 스마트폰 지도 위치표기 또한 붉은색 푸른색으로 나누었던게 놀라웠습니다. 가끔 옷은 색을 반대로 배합해 입을 때도 있으나 각자 지정된 색에서 벗어나질 못합니다. 스가는 붉은 와이셔츠를 벗어난적이 없고 나츠미와 딸 모카는 붉은 악세사리 이외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진짜 초반에 나츠미의 시계줄은 파란색이나 시계안은 역시나 빨간색. 호다카와 히나도 대부분 푸른계열의 옷만을 입게 되는데 죽은 아내를 묘사하는 스가의 반지는 붉은 보석이 박혀있으며 호다카가 히나를 위해 산 반지는 푸른색 반지이죠. 이건 너무 일부러 대비시킨다고 느꼈던 건 앞서 언급한 반지와 나츠미의 붉은 머리칼과 붉은 눈동자, 히나의 푸른 머리칼과 푸른 눈동자 정도가 있었습니다. 물론 스가의 아내도, 나츠미도 비여자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히나가 사라지고 나서까지 절대 날씨를 포함한 대부분의 미신을 믿지 않는 스가 케이스케의 언행이 그걸 보여줍니다. 다만 평행선상의 운명은 확실히 하고 싶었다고 생각합니다. 

작중에서 호다카와 케이스케는 닮았다는 언급의 연출이 있는데 이는 사랑하는 이를 잃을 수 있는, 잃어버린 불행한 운명의 남자로써 해석될 수 있습니다. 케이스케는 비여자와 관련된 남성이라면 호다카는 맑음여자와 관련된 남성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들이 겪는 슬픈 운명은 비슷하죠. 케이스케는 이미 아내를 잃었고 히나의 어머니또한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케이스케의 딸 또한 천식을 가지고있으며 날씨의 무녀로 발탁된 히나 또한 죽음과 같은 운명을 가질 예정이었습니다. 날씨의 운명과 관련된 집안들은 단명할 운명을 가진게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작중에 나오는 악세사리들은 그들이 날씨의 무녀와 관련된 운명을 가지고 있으며 서로 비슷하게 얽혀있다는것을 은유적으로 나타냅니다. 그들이 가진 악세사리의 붉은 보석과 푸른 물방울의 보석은 아마 그들이 그런 운명을 가진 집안이며 악세사리를 후대에 대물림 한다는건 그런 운명 또한 대물림 된다는걸 표현한 것 같습니다. 이를 예시로 날씨의 무녀에서 벗어나 땅으로 내려온 히나의 물방울 쵸커는 끊어져 버린채로 클로즈업 됩니다. 이후 그녀는 날씨의 무녀가 아니게 되며 호다카와 재회했을때는 착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총괄적으로 악세사리 자체나 그 색등이 날씨의 무녀와 관련된 운명 등을 상징 한다면 반지는 조금 더 특별하게 사랑하는 이에 대한 그리움 또한 나타내는데 케이스케가 반지를 계속 만질 때가 있습니다. 이는 스가집안이 비의 무녀와 연관이 있음을 암시하는 동시에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케이스케의 심리묘사입니다. 당연히 평행선상인 호다카 또한 반지를 만지며 히나를 생각하고 그리워 하는 묘사가 많습니다.



1회차 때는 케이스케가 우는 장면이 좀 낮설었습니다. 갑자기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나온다는 전개는 몹시 싫어하는데 2회차 까지도 당연히 왜 우는지 잘 납득이 안됐죠. 2회차 까지도 케이스케의 심경 변화가 좀 개연성이 떨어진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3회차부터 반지를 만지는 행위가 사랑하는 아내를 그리워하는 데에서 온다는 걸 깨닫고부터는 케이스케의 감정선이 공감이 되더라구요. 케이스케는 미신같은건 일절 믿지 않지만 맑은 하늘이 돌아온 후 실제로 믿지도 않던 날씨의 무녀에 관해 히나를 제물로 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받아들이게 됩니다. 케이스케는 호다카와 히나의 사이를 알고 있었고 주위 사람들이 케이스케와 호다카가 닮았다는 것처럼 케이스케 또한 당연히 히나가 호다카에게 어떤 존재인지 모를리 없었을 겁니다. 히나가 사라졌다고 직감한뒤 늙은 경찰과 조우하게 되죠. 여자아이를 제물로해 날씨가 돌아왔다는 말을 들었다는 경찰에게 그런 터무니 없는 이야기를 믿는거냐고 따지면서도 그는 반지를 만지고 있습니다. 말은 부정하고 있지만 당연히 호다카와 자신을 겹쳐보고 있었을겁니다. 경찰이 "그렇게 까지해서 만나고 싶은 이가 있다는게 저로써는 이해가 잘 가진 않지만..." 이라는 대사에 케이스케는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케이스케가 죽은 아내를 얼마나 그리워 하는지에 대한 서사는 부족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호다카와 히나를 볼수록 자신또한 아내를 그리워하게 되고 호다카가 얼마나 히나를 되찾고 싶은지, 얼마나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고 싶은지, 사랑하는 이가 떠나서 볼 수 없을 때의 슬픔을 자기가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호다카와 같은 평행선에 있는 캐릭터 이지만 어른을 대표하는 캐릭터인 케이스케가 호다카에게 동조하기 시작하는건 이때부터 입니다.

케이스케는 다시 호다카와 조우한 이후로도 호다카를 설득하려고 합니다. 호다카가 어린아이를 부각시켜 행동이 가벼운 것과 대비되게 케이스케는 확실히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캐릭터입니다. 호다카를 위해 피해가 더 적은 방법으로 상황을 해결하려 했을거에요. 많은 분들이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경찰에게 주먹을 휘두르는게 의아하다고 합니다. 케이스케가 호다카를 동조하기 시작한건 앞서 호다카와 히나가 갈라지고 히나가 정말 사라진게 아닐까 의심이 든 순간부터입니다. 그럼에도 어른으로써 호다카를 위해 '용의자 신분'임에도 호다카를 설득하러 왔습니다. 호다카를 설득하기위해 온 케이스케가 완전히 호다카의 이해자가 된것은 히나를 만나고 싶다고 외치던 모습을 자신과 겹쳐보아 마음이 기울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경찰에게 손을 대는건 좀 과잉행동이라 생각하면서도 호다카를 도와주게 된 것은 케이스케의 심경변화에 있어 당연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케이스케가 어떻게 건물을 찾았는지 이야기된 바가 너무 없었습니다. 가장 현실성 있는 과정은 나츠미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케이스케는 늙은 형사와 같이 있었지만 젊은 형사와는 같이 있지 않았음에도 케이스케가 먼저 도착하고 늙은 형사와 젊은 형사가 용의자를 추적해 뒤쫒아 왔죠. 케이스케가 경찰과 같이 호다카의 뒤를 밟은게 아니고 케이스케가 먼저 호다카가 있는 곳을 예측해서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경찰이 용의자를 추적해서 왔다는 묘사가 있는데 이게 호다카를 말하는건지 케이스케를 말하는건지는 모르겠습니다. 호다카는 나츠미와 스쿠터로 도주하면서 나츠미에게 '히나는 그곳의 신사를 지나 하늘로 갔다고' 언급하며 나츠미와 대화합니다. 신사가 있는 건물을 아는 사람은 이로써 나츠미도 포함되게 된것입니다. 케이스케가 호다카를 찾으러 나섰을때 나츠미에게 전화로 들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 반지를 계속 만지는 케이스케는 시간을달리는 소녀에 등장하는 마코토 이모와 같은격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케이스케 또한 과거를 가지고 있고 이번 세대에 아이들을 후회하지 않는 길로 이끌어주기 위한 길잡이 역할이라고도 여겨졌죠. 이 두 등장인물 모드 작중엔 그들의 과거사는 나오지 않습니다. 날씨의 아이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오버랩 하게 되는 연출이 꽤 있습니다. 케이스케가 마코토 이모와 비교되는 격이며 작중나오는 여름의 적란운을 향해 달려나가는 주인공들이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떠올리게 해줬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날씨의 아이 OST "사랑이 할 수 있는 일이 아직 있을까"가 시달소의 OST와 굉장히 유사하게 들립니다. 공감하시는 분들이 있을까요?





감독님의 무대인사에 꼭 질문드리고 싶었던 것이 있어서 손들었지만 발탁되진 못했습니다.




“신(하늘)은 날씨의 무녀로써 하늘과 이어진 무녀(재물)를 앗아가는데, 히나를 되돌려줄 정도로 특별한 대가를 호다카에게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여기서 표현된 신(하늘)은 확실히 사람에게 친절하진 않습니다. ‘하늘’은 지금까지 날씨의 무녀를 재물로 삼아 화를 풀었다고 합니다. 이게 직접적으로 앗아갈려고 하는 적극적인 행위는 아니나 무녀를 대가로 한다는 자체는 변함이 없습니다. 언급된 말들로 보면 확실히 무녀들은 하늘을 다루는 존재가 아니라 하늘의 화를 풀고 치유하는 존재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늘로 가게 된 히나는 무척이나 아름답고 깨끗하면서도 심해를 보는듯한 아득히 깊고 무서운 적란운섬에서 그저 덩그러니 혼자 있게 됩니다. 그런데 좀 충격인 건 이런 하늘섬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 등장한다는 것인데 여기에 이전 시대 무녀(재물)들이 지금까지 홀로 갇혀 있을 가능성이 일순 떠올랐는데 진짜로 오싹했습니다. 하늘은 날씨를 다루고 힘을 다 쓴 무녀를 데려가지요. 이는 히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늘에 묶이게 되는 현상입니다. 하지만 무녀를 되돌려주는데 이렇게 이유가 없어도 되나? 싶었습니다. 호다카는 신에게 제발 아무것도 주지 않으셔도 되고 아무것도 앗아가지 말아 달라고 빕니다. 그리고 경찰에게 어떻게든 도망쳐 신사로 뛰어들어 하늘섬으로 간 뒤 호다카를 데려옵니다. 자기 의지로 올라가지 않을 순 없지만 자기 의지로 내려올 순 있을까? 간절은 했지만 특별한 이유는 없었던 호다카에게 왜 이렇게 후한 대우를 해주는 걸까요? 저는 그게 궁금했습니다. 다만 그걸 감독님께 여쭤보지 못해서 아쉽네요. 다만 만약 3년간 그치지도 않던 그 비는 재물을 함부로 다시 가져가서 하늘이 분노했기 때문인지 호다카에 대한 대가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모든일은 후불제로 이루어 지는건가...




작품에서는 아이 하나를 받쳐 모든 이가 행복한 날씨가 돌아올 수 있다면 그건 당연히 그럴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 주제가 나옵니다. 호다카는 당연히 여느 주인공이 그렇듯 다른 이들의 불행보다 히나 하나만을 바라게 됩니다.


“날씨 따위... 계속 미쳐있어도 돼!”

어떤 분에 질문에 감독님은 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한 사람을 선택하는 그런 사랑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씀하셨는데 정확하게 이말이 맞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실제로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살겠다는 아이들은 서로를 지키기위해 남들의 많은것을 희생시키게 됩니다. 호다카는 어떻게든 경찰을 곤란하게 하고 자기를 보살펴준 케이스케를 위협하고 히나는 호다카를 구하기위해 번개를 내려칩니다. 그들은 서로를 위해 결정적으로 '맑은 날씨'를 포기하게 되죠. 그들의 잘잘못을 뒤로하고 확실히 단 한사람을 택하는 그런사랑이 주제라면 극적으로 잘 표현했다 생각합니다. 침수된 도쿄는 서로를 택했던 이들의 간절함을 더 부각시키는 희생양이죠. 히나는 모두의 날씨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 합니다만 쉽게 뜻을 바꾸는 모습이 어린아이 같기도 하고 진심까지는 아니었던 것처럼 순수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남들의 날씨를 걱정하는 마음이 진짜였다면 그만큼 호다카의 말이 특별했다는 것이겠죠?



신카이 마코토 감독님의 작품은 세계관이 이어지는 건지 전작의 등장인물이 계속 등장합니다. 이번에도 타키와 미츠하를 넣은 건 한국 팬들이 다음에 꼭 넣어달라고 해서 작중에 넣게 되었다고 합니다. (비즈니스적 발언인지 정말인지는...) 여기서 충격적인 건 히나를 되돌려놓고 도쿄는 3년간 비가 내려 침수되게 되는데... 어떤 분의 질문에 감독님은 "이제 도쿄가 물에 잠겼으니 다음의 작품엔 도쿄를 배경으로 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웃으며 언급하셨는데 상당히 충격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세계관이 이어져있다는 걸 감안하고  감독님의 발언을 생각해보면 혜성에 마을 하나가 붕괴되고 얼마든지 존재자체가 지워질 수 있으면서 하늘의 의지에 수도가 침수되는 세계관... 특별한 운명의 힘도 신도 존재하는 것 같으면서 인간에게 친애한지는 애매한 그런 세계관... 솔직히 좀 무섭다고 생각했어요. 날씨의 아이 결말배경이 아직 타키와 미츠하가 만나기 이전이라면 도쿄가 침수되고 또 무슨일이 벌어졌길래 그둘이 만났을때 원상 복귀 되었는지... 정말 다난한 세계관 같습니다. 열린 결말 중에는 괜찮은 편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후속작으로 나머지 일상 이야기를 풀어도 재밌을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할 수있는게 신카이 마코토 감독님의 작품 특색이죠. 오히려 이 뒤에 얘들이 어떻게 되냐가 더 궁금하게 만드는게 감독님의 제작철학 같습니다.



마음에 들었던 장면을 꼽으라면 히나가 트럭을 일순간에 폭파시켜버리는 장면이었습니다.  2회차부턴 아니었지만, 처음에 트럭을 폭파시키는걸 봤을 땐 정말 입이 딱 벌어지더라구요. 이유없이 뭔가를 펑펑 폭파시키는 영화는 민폐같아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슬슬 루즈해질때 쯤 저 장면이 나오니 정신이 번쩍들어버려서 그만... 솔직히 로맨스판타지가 아니라 액션스릴러로 가도 잘될것 같다고 생각해버렸습니다. 

스토리 자체는 호다카의 치기어린 행동거짐이나 너무 완만하게 돌아오게 된 히나 때문인지 몰라도 그렇게 큰 감동은 없었는데 2회차에서...



"이 세상이 네 작은 어깨에 짊어져 있는 게

내게만은 보여서"


라는 사가 '눈에 보였을때'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1회차에선 그냥 노래 좋구나 하고 흘려들었는데 2회차에서 가사가 처음 눈에 보였을때, 장면과 비교되는 그 가사를 이해했을때 눈물이 나려했습니다. 3회차부턴 시들해졌지만 2회차로 봤을때 그 순간은 너의 이름은.에서 혜성이 떨어지던 그 장면과 동일시 될 정도의 기분을 받은 명장면 이었습니다. 3회차부턴 케이스케가 눈물이 흘릴때 좀 울컥하더라구요.



그냥 그림이 아름답다고 하긴 아쉬울 정도로 히나가 날씨를 다루는 장면은 소리까지 사용해 가슴을 울리게 연출되었습니다. 그만큼 날씨를 바꾸며 안 좋게 변하는 도쿄의 모습은 더 처참하게 다가오는데 사랑과 여름을 내비치면서도 이렇게 잿빛일 수 있을까, 잿빛으로 여름을 표현하는 건 정말 참신한 연출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히로인을 구하면서 다시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결말이 아니라 히로인을 위해 세상을 한번 포기하는 이야기. 과연 그렇게 까지 특별한 결말일까 라고 여겨질 수 있지만 이걸 대중적인 면모에서 본다면 과감하고 참신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