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해피 투게더]“우리 다시 시작하자” 그가 다시 시작하자고 하면 난 늘 그와 함께했다

위드무비 2023. 3. 31. 17:05

 

Imagine me and you, I do

 

 

 

 

너와 내가 함께 있는 모습은 어떠했는가,

세상의 끝에서 나는 너와 함께한 기억을 모두 버린다.

 

 

보영은 방랑자다. 사랑이 주는 찰나의 쾌락과 안온한 감각을 좋아하지만

그것과 함께 수반되는 사랑의 무거움과 깊이와 책임감을 알 지 못하는

순진하고도, 어리석은, 가볍고도, 솔직한 캐릭터인 반면

그의 뒤에서 늘 그를 바라보고 있는 아휘는 든든한 나무가 되어 줄 수 있는 남자다.

사랑의 달콤함보다는, 그것이 몰고 오는 진득하고 씁쓸한 감정의 잔재마저

조용하게 감싸안을 수 있는 책임감 있는 그런 남자.

너무나도 상반된 둘의 성격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접점에 이르지 못하는 둘의 험난한 사랑을 예고한다. 이별의 아픔과 슬픔을 변주곡삼아서.

 

부에노스 아이레스.

아르헨티나의 한 도시를 배경삼아 펼쳐지는 두 이민자의 사랑과 방황의 이야기는,

당시에는 파격적이었던 동성애라는 퀴어 코드를 중심에 두고 그림같은 사랑이야기를 관객에게 속삭인다. 그들이 전해주는 사랑이야기는, 결코 낭만적이지도 달콤하지도 않다.

멜로 영화 답지 않은 음울한 영상과 우울한 분위기. 낮게 깔리는 탱고음악과 아휘와 보영의 입에서 피어오르는 아청색 담배연기. 그 모든 것들이 만들어내는 사랑의 분위기는 아름답기보다는 불안하고 위험하며, 그래서 더욱 자극적이다.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하는 보영과 아휘.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방랑을 일삼는 보영의 뒷모습만을 바라보던 아휘는, 그러한 관계에 점점 지쳐가고, 보영은 그런 아휘를 뒤돌아 보지 못한다. 그러한 두 사람이 지향하는 유일한 파라다이스는 이과수폭포. 그 이상향에 도달하지 못한 보영과 아휘는, 어느 탱고바에서 다시 만난다. 둘은 무던히도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하지만, 이처럼 슬픈 이별과 만남은 없다.

어느 미국인의 정부로, 탱고바의 안내원으로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찰나의 스침이 서로에게는 결코 끊어낼 수 없는 긴 잔상을 남긴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보영은, 피투성이가 된 채로 아휘를 찾아오고, 그의 처연한 모습을 차마 보지 못하는 아휘는 그를 깊게 끌어안는다. 보영에게 있어서 아휘는 최후의 안식처였고, 아휘에게 있어 보영은 내칠 수 없는 숙명이었다.

 

 

택시의 뒷자석에서 담배 한 대를 나눠 피우던 보영은, 천천히 아휘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그런 그를 아무 말 하지 않고 받아들여주는 아휘. 두 사람의 사랑은 보영의 변덕스럽고 짜증스러운 성격만큼이나 처절하고, 그의 순진함만큼이나 잔인하다.

그러나, 때때로 두 사람은 달콤하게 사랑한다. 아휘와 보영이 낡은 주방에서 탱고를 추는 그 장면은, 은은하게 삽입된 음악과 함께 이 영화 최고의 장면 중 하나이다.

길고 진부한 대사 대신에, 긴 침묵과 정적을 통해 그들의 사랑을 보여준다. 고통스러울 정도로 계속 되풀이되는 다정한 사랑과 잔혹한 이별. 영화를 통해 본 그들의 사랑은 불안하고 위태롭지만, 결코 끝나지는 않는다. 장국영과 양조위는 몸짓과 눈빛만으로도 이러한 복잡한 사연들을 잘 풀어냈다. 그들의 캐릭터에 완벽히 스며든 우울과 절제의 감정만으로도.

 

그러나 결국 보영은 떠나간다. 아휘에게 만족할 수 없어서가 아닌, 그의 천성이고 습관이고 생활인 방랑에게서는 사랑조차 구해낼 수가 없다. 보영은 떠나가고, 아휘는 어두운 밤거리를 달리며 고뇌한다. 무너져가는 그들의 관계를 흔들리는 카메라가 쫓고, 우리는 아휘가 아픈 보영에게 다정하게 스프를 떠먹이던 장면을 회상한다. 그들의 사랑은, 늘 그러하듯 처음이 끝이고, 끝이 처음인, 어느 것도 남는 것이 아닌, 제로섬이다.

 

 

보영이 떠나가고 힘들어하는 아휘에게 동료였던 장은 그의 모든 슬픔을 지구의 끝에 버리고 오겠노라고 한다. 아휘의 모든 슬픔이 담겨있는 녹음기를 그곳에 두기 위해, 그것을 재생시켰지만 장에게 들리는 것은, 숨죽인 흐느낌 뿐이다.

그것이 아휘의 사랑이다.

숨죽이고, 눈물을 흘리고, 아파하지만 잡을 수 없고 떠날 수 없는. 언제나 한 곳에 있을 수 밖에 없는 우직하고 커다란 나무와 같은 사랑. 

그는 혼자 이과수 폭포를 찾았고, 그곳에서 폭포수를 맞으며 그제야 눈치채지 못할 눈물을 겨우 흘려낸다. 그의 하나뿐인 연인, 보영을 생각하며.

방황하던 보영은, 결국 마지막 안식처인 아휘를 찾지만 그는 이미 대만으로 떠난 후다.

철 없고, 변덕스러운 보영은 아휘가 덮고 자던 담요를 껴안으며 울음을 토해낸다. 그것이 얼마나 서럽고, 애처로운 것인가 -그 순간만큼은 장국영이 스크린을 지배하고 있다-.

보영의 사랑은 그렇다. 늘 떠날 수 밖에 없는 숙명임을 알면서도, 언제나 아휘에게 되돌아가고 마는 나침반같은. 아휘에게로 향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러나 늘 방황하는 사랑.

아휘의 행방을 알 지 못하는 보영은, 언젠가는 그를 만날거라는 생각으로 대만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그렇게 영화는 끝이 난다.

 

 

해피엔딩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새드엔딩도 아닌,

가슴이 먹먹하지만 눈물이 나오지는 않는 그런 멜로 영화였다, 해피투게더는.

 

그리고, 홍콩의 화려한 밤거리를 비추며 흘러나오는 happy together.

왕가위 감독의 명함이나 다름없는 붉은 바탕이 화면을 꽉 채우고,

곧이어 나타나는 장국영과 양조위, 그리고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

그 장면에서 관객들은 온통 해피투게더의 무겁고 음울한 분위기가 주는

달콤한 슬픔에 잠식당한다.

 

해피투게더는 사랑이야기다.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보영은 충동적이고 감각적은 삶을 살고 있으며,

그런 그를 묵묵히 지켜보며 조용하게 책임감을 다하는 아휘.

어울릴 듯 하면서도 어울리지 않는 이 둘의 96분간의 사랑이야기를

왕가위는 특유의 세심한 구성으로 잘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롱 쇼트와, 천부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음악 선택,

그리고 주인공들의 감성에 따라 젖어드는 화면 구성.

매 프레임이 예술이었던 영화는, 해피투게더가 처음이었다.

 

최고의 퀴어영화가 아닌,

최고의 멜로영화.

 

"귀가 눈보다 사물을 잘봐. 예를 들어 누군가 행복을 가장해도,

그가 내는 소리를 가장하지 못해."

 

 

 

 

+

 

아 어쩌면 좋을까 이 영화를.

왕가위 감독은 천재고,

장국영 또한 그렇게 세상을 저버린 것이 안타까울 정도로 훌륭했다.

분명 스크린을 많이 차지하고 있는 것은, 양조위인데 그의 우직하고 애수어린 시선도 좋았지만 변덕스럽고 외향적인 장국영이 양조위의 이불을 끌어안고 우는 그 장면하나로- 장국영은 양조위를 압도하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 처연한 모습이 자꾸만 되풀이되어서, 오늘은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할 것만 같다.

 

세상엔, 이런 사랑도 있다.

...그렇지만 Happy Together.